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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句丽王室后裔被测出为o3a2*

本帖最后由 红山人 于 2013-3-25 09:39 编辑

横城高氏是和日本高丽氏,以长寿王为始祖的辽阳高氏一起是现存的少数被族谱记载为高句丽王族后裔的姓氏。为了区分他们和济州高氏。东国高氏。他们也被称为高句丽高氏。现人口四千多。是非常少数的姓氏。始祖被记载为朱蒙
东国高氏是什么来源?
三界无安,犹如火宅。众苦充满,甚可怖畏
                            --------《法华经》
是以法从心生。名因法立
                      ------------《宗镜录》
另外有一例金宁金氏测出为D2,比较有意思,韩国前总统金泳三为金宁金氏
三界无安,犹如火宅。众苦充满,甚可怖畏
                            --------《法华经》
是以法从心生。名因法立
                      ------------《宗镜录》
我爱《新撰姓氏录》
总觉得那是第一部东亚民间社会百科全书
江水三千里,家書十五行
本帖最后由 sahaliyan 于 2013-3-25 10:34 编辑

我记得目前各姓氏结果有
全州李-F444
高灵申-47z
平山申-M117
安东权-P203
宋-P201*
丰壤赵-F444
尹(不知本贯是什么)-P203
丰山洪-002611
星州李-M176
德水李-M117
原州崔-M117
丰山柳-M176
光山金-M217
水原白-M217
水原白-002611
原州元-M217
各位可以补充
三界无安,犹如火宅。众苦充满,甚可怖畏
                            --------《法华经》
是以法从心生。名因法立
                      ------------《宗镜录》
我记得目前各姓氏结果有
全州李-F444
高灵申-47z
平山申-M117
安东权-P203
宋-P201*
丰壤赵-F444
尹(不知本贯是什么)-P203
丰山洪-002611
星州李-M176
德水李-M117
原州崔-M117
丰山柳-M176
光山金-M ...
sahaliyan 发表于 2013-3-25 10:01
熊川朱-02b
熊川朱-02b
诺亚 发表于 2013-3-25 10:25
他们用的本贯是新安
韩国孔的本贯也是曲阜
三界无安,犹如火宅。众苦充满,甚可怖畏
                            --------《法华经》
是以法从心生。名因法立
                      ------------《宗镜录》
他们用的本贯是新安
韩国孔的本贯也是曲阜
sahaliyan 发表于 2013-3-25 10:27
冒充中国人而已,其实就是韩国土著。
东国高氏是什么来源?
sahaliyan 发表于 2013-3-25 09:41
查不到具体信息。只说始祖是宝藏王次子仁胜
另外我怀疑新罗庆州金为M217,韩国有一个M217大簇,还是比较显著的
三界无安,犹如火宅。众苦充满,甚可怖畏
                            --------《法华经》
是以法从心生。名因法立
                      ------------《宗镜录》
有可能。而且可能跟匈奴有关。即使不是也很可能是外来势力。
有可能。而且可能跟匈奴有关。即使不是也很可能是外来势力。
红山人 发表于 2013-3-25 10:45
这倒不一定
不知道自称新罗王后裔的名门安东金氏是否也是C3
另北朝鲜的独裁者所在的全州金氏也自称新罗王后裔,我觉得很不可靠
三界无安,犹如火宅。众苦充满,甚可怖畏
                            --------《法华经》
是以法从心生。名因法立
                      ------------《宗镜录》
韩国网友的帖子,有点意思,转过来
61) 풍산 홍씨(豊山 洪氏)
지난 6번째 시간에 남양 홍씨 당홍계에 대해 알아보았었죠. 남양 홍씨 토홍계에 대해서도 간략하나마 언급하고 이들의 부계하플로그룹의 추측까지 해 보았습니다. 이번엔 풍산 홍씨입니다. 제가 풍산 류가인 관계로 같은 풍산을 본관으로 쓰고 있는 성씨인 풍산 홍씨나 풍산 김씨에 대해 다소나마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도 하고, 이번에 정안님이 소개해 주신 23andme에서 O3a1c(JST002611)로 나온 분이 한 분 있어 포스팅합니다. 풍산 홍씨의 시조는 홍지경(洪之慶)으로, 그 선계의 문헌이 실전되어 상고할 수 없다고 하며, 그는 고려 고종 29년(서기 1242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국학직학(國學直學)을 역임한 후 안동 풍산에 정착세거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풍산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주요한 인물로는 광해군 때 대사헌을 거쳐 개성부 유수를 지낸 홍이상(洪履詳), 농예, 의약, 구황에 관한 저서인 산림경제(山林經濟)를 저술한 홍만선(洪萬選), 영조 대 영의정을 지낸 홍봉한(洪鳳漢), 그의 동생이자 좌의정을 지낸 홍인한(洪麟漢), 정조 때 대제학을 지냈으며 국정에 크게 관여한 홍국영(洪國榮) 등이 있습니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36,420명의 중소 성씨이며. 집성촌으론 충북 충주시 노은면, 전남 나주시 일원, 충남 천안시 일원, 경기도 고양시 일원, 경남 진주시, 양산시 일원 등입니다. 인구보정된 지역별 자료를 보면, 본적지인 경북에는 그 빈도가 아주 낮고, 의외로 광주(26.7%)에 압도적으로 많으며, 전남(10.2%), 충북(8.3%), 서울(7.5%), 경남(6.3%) 등의 순서를 보여, 본관지와 별 관계없는 분포를 보인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나주시 일원에 있는 집성촌의 인구가 가장 많았던 점으로 보아 광주, 전남의 가장 높은 빈도를 예상해 볼 수 있고, 충북 충주시 일원, 경남 일원에 집성촌이 있어 충북, 경남 등도 설명이 될 수 있지만, 왜 본관의 본거지와는 상당히 먼 지역에 이들 집성촌이 있는지에 대해선 알 수 없습니다. 성씨에 따른 한국인집단의 Y 염색체 DNA 다형에서, 홍씨는 총 27명이었는데, O2b는 18.5%, O2b1이 11.1%, 기타가 70.4%로, 이들의 주력은 비-O2b계열의 부계하플로를 보였습니다. FamilytreeDNA의 Korea Project에 올라온 본관을 알 수 없는 홍씨분의 부계하플로 결과로는 O2b*가 나왔고, 23andme의 풍산 홍씨분이 O3a1c로 나온 점을 고려하여, 풍산 홍씨는 O3a1c, 토홍계 남양 홍씨는 O2b*, 당홍계 남양 홍씨는 O3*계열의 하위 하플로가 나오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다만, 홍씨가 워낙 대성이고 당홍계 남양 홍씨는 인구가 많기 때문에 다양한 하플로를 포함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합니다.
62) 풍양 조씨(豊壤 趙氏)
풍양 조씨는 조선 후기 대표적인 권문세족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시조는 조맹(趙孟)으로, 초명이 바위(巖)로서 풍양현의 천마산(현재 양주시 진건면) 아래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는 만년에야 고려 태조 왕건을 만나 후삼국 통일에 공을 세워 개국공신이 되고, 이름을 '孟'으로 하사받았으며, 벼슬이 문하시중 평장사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 후 6세가 실전되어 조지린(趙之藺)을 1세조로 하는 전직공파(殿直公派)와 몇 세가 실전되었는지 알수 없으나 조신혁(趙臣赫)을 1세조로 하는 평장공파(平章公派)로 대별되는데, 이 양파는 서로 촌수를 가릴 수가 없는 관계로 족보도 따로 편찬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도 천마산 아래에 조맹이 왕건을 처음 만났던 암굴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대표적 인물로는 숙종 대 우의정을 지낸 조상우(趙相愚), 영조 대 좌의정 조문명(趙文命), 영조 대 영의정 조현명(趙顯命), 성리학자이자 효종 대 좌의정을 지낸 조익(趙翼), 영조 때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고구마 종자를 들여온 조엄(趙曮), 헌종 대에서 철종 대에 걸쳐 영의정을 지낸 조인영(趙寅永) 등이 있습니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113,798명이며, 그 집성촌은 경북 상주시 일원, 충남 부여군 장암면 일원, 강원도 양구군 일원, 충남 서천시 문산면 일원, 전북 군산시 미면 신관리 등입니다. 인구별 분포를 보면,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 60% 가까운 인구가 몰려 있고, 인구보정된 지역별 자료에서는 충남(13.4%), 대전(12.5%), 강원(10.5%), 경기(9.0%), 서울(8.7%), 전북(8.6%) 등으로 한반도 중북부에 중심을 둔 분포를 보이고 있으며, 전남, 경남 등의 남부 지방에는 소수의 분포를 보이고 있어, 본관을 중심으로 한 분포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에 정안님이 소개해 주신 23andme에서 O3a2c1(M134)로 추정되는 분이 한 분 나왔습니다. 하위 SNP인 M117이 조사가 되지 않았으므로 M117일 수도 있겠으나, M133이 (-)로 나왔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M117은 거의 M133임) M134로 생각해도 무방할 듯 합니다. 이 풍양 조씨도 인구수가 꽤 되는 데다, 위에서 언급했듯 조상이 다를지도 모르는 양파로 구분되는 점을 보아, 여러 계통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나, M134가 주요 세력일 가능성은 높아 보입니다. 풍양 조씨에서 전형적인 북방 세력으로 보이는 M134가 나온 점을 보아, 이들은 고구려나 백제의 주류 귀족 세력이었다가 통일신라기에 몰락(?)한 다음, 고려에 충성함으로써 세력을 회복한 집안으로 보입니다. 물론, 다른 많은 풍양 조씨의 부계하플로의 조사가 있어야 하겠지요.
63) 김녕 김씨(金寧 金氏)
김녕 김씨는 우리에겐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으로 유명한 집안이죠. 김녕 김씨의 시조인 김시흥(金時興)은 김알지(金閼智)의 39세손이며 경순왕의 넷째아들 김은열(金殷說)의 5세손 (혹은 8세손) 동정공(同正公) 김봉기(金鳳麒)의 넷째 아들입니다. 김시흥이 고려 인조 때 평장사를 역임하고 묘청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김녕군(金寧君)에 봉해졌는데 김녕은 김해의 옛 지명으로 김해를 본관으로 하여 선김(先金, 김수로계 김해 김씨), 후김(後金, 김녕 김씨)으로 구분해 왔으나 후손들이 구분하지 못하자 조선 헌종 때 (또 다른 문서에는 고종 2년) 왕명으로 김녕으로 다시 환원하였다 합니다. 대표적 인물로는 고려시대 평장사를 지낸 김향(金珦), 조선시대 판서를 지낸 김문기(金文起) 등이 있으며, 현대의 최고 유명인물은 앞서도 언급한 김영삼 전대통령입니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513,015명에 이릅니다. 집성촌은 대구시 북구 노곡동, 경남 진주시 진성면 하촌리, 경북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 경북 김천시 감문면 금나동, 경남 남해군 삼동면 봉화리 등입니다. 인구보정된 지역별 자료를 보면, 전국적으로 대체로 고른 분포를 보이나, 특히 경상권(경남 11.2%, 부산 10.3%, 경북 10.1%, 대구 10.1%, 울산 10.0%)에 많은 분포를 보여 집성촌 및 그 본관지의 분포와 유사한 분포를 보입니다. 정안님이 소개해 주신 23andme에서 D2a1b1(P53)로 나온 분이 있어 비상한 충격적 관심(?)을 불러 일으킨 바 있는데, 초재님 말씀으로는 O2b*로 나온 분도 있어 이 김녕 김씨도 많은 인구만큼 다양한 부계하플로를 가질 것으로 예측됩니다. 문제는 주류가 무엇인가...하는 것인데, 만일 주류 부계하플로가 D2a1b라면, 이들이 신라 김씨 출신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며, 단지 경남 남해안 등 광범위한 곳에 D2가 많이 분포한다는 정보는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三界无安,犹如火宅。众苦充满,甚可怖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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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하동 정씨(河東 鄭氏)
하동 정씨는 "조선씨족통보"에 따르면 연원을 알 수 없는 여섯 계통으로 분류하고 있으나 현존하는 하동 정씨의 후손들 대부분은 본관을 같이하며 계통을 달리 하고 있습니다. 현재로는 각각의 시조를 두고 있는 세 개의 계통이 있습니다. 먼저 도정계(道正系)의 시조 정도정(鄭道正)은 신라 진성여왕 때 하동 지방의 호족 출신으로 923년 경명왕 7년 후백제군이 신라를 침범할 때 하동호장이 되어 향병을 단련하여 하동성을 지켰으며, 그 후 고려로 통합될 때에 경순왕을 개성까지 호위하여 내의성상시에 제수되었고 이어 광평성평장사에 올랐습니다. 그 후 세계가 실전되어 고려 때 문하시중을 지낸 정석숭(鄭碩崇)을 1세조로 세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응계(應系)의 시조 정응(鄭應)은 고려 고종 때 문과에 올라 관직이 금자광록대부 도첨의좌정승, 검교태자첨사를 지냈습니다. 마지막으로 손위계(遜位系)의 시조 정손위(鄭遜位)는 고려 숙종, 예종, 인종, 의종, 명종 등 5왕조에서 벼슬을 한 사람으로, 정헌대부 지예부사, 응양대장군, 문하시중에 올랐으며 하동백에 봉해졌습니다. 그의 아들 정세유(鄭世裕)는 명종 때 서북면 병마절도사를 역임하고 형부상서에 이르렀습니다. 그 후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고 하동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대표적 인물로는 세종 때 농사직설(農事直設)을 편찬한 정초(鄭招), 세종~세조대의 대학자인 정인지(鄭麟趾), 성종 때 대학자인 정여창(鄭汝昌), 실학파의 지리학자로 팔도도(八道圖)를 제작한 정상기(鄭尙驥) 등이 있으며, 조선 시대에 상신 1명, 대제학 1명, 문과 급제자 58명을 배출한 명문으로 꼽힙니다. 현대의 가장 유명한 인물로는 현대가를 창시한 정주영을 들 수 있습니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158,396명이며, 주요 집성촌은 전남 화순군 이양면, 평북 철산군 부서면 등입니다. 인구보정된 지역별 분포를 보면, 예상 외로 광주(22.9%), 전남(13.2%), 대전(8.2%) 등 호남 지방에 집중된 분포를 보입니다. 어차피 하동이 전남과 경남의 접경 지역에 있는 점을 고려하면 하동 정씨가 전남에 집중 분포하는 것도 일리가 있으며, 집성촌이 전남 화순에 있다는 점도 그 방증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평북 철산에 집성촌이 있다는 것은 다소 의외지만, 북한 지역의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이들의 분포가 좀더 잘 이해가 되리라 보는데, 다소 아쉽네요... 우리 카페의 회원이신 정안님이 23andme에서 조사하신 결과로 C3가 나왔는데, 23andme가 C3의 더 하위 SNP을 검사하지 않는 관계로 하위 하플로까지 알 수는 없지만, 한국인에서 가장 많은 C3f1(Z1300)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성씨별 하플로 자료에서 정씨의 24%가 C3로 나온 점, 전라도 지역에서도 C3가 적지 않은 점 등을 볼 때, 전라도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하동 정씨가 C3일 개연성은 매우 높습니다. 물론, 하동 정씨의 인구수가 적지 않은 점, 이미 3 계통 이상의 서로 다른 시조를 두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하동 정씨도 대략 여러 부계하플로로 구성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65) 연일 정씨(延日 鄭氏)
연일 정씨는 정종은(鄭宗殷)을 시조로 하며, 신라 때 간관(諫官)을 지냈는데, 신라 6촌 중 취산 진지촌의 촌장 지백호(知伯虎)의 후손으로 신라 태종무열왕 때 간의대부를 지내고 김유신과 함께 삼국통일에 공을 세웠으나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인동 약목현으로 유배당해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중간 세계는 알 수 없으나 그의 후손 정의경(鄭宜卿)이 연일현(延日縣)으로 옮겨 호장을 지낸 까닭으로 후손들이 본관을 연일로 했으며 연일이 영일(迎日)로 바뀌었기 때문에 영일 정씨라고도 하고, 또 연일의 옛 이름이 오천(烏川)이었으므로 오천 정씨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정의경 이후 다시 세계가 실전되어 고려 의종 때의 중신으로 추밀원지주사를 지낸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로 이어지는 지주사공파(知奏事公派)와 고려 대 감무를 지낸 정극유(鄭克儒)를 1세조로 하여 문정공(文貞公) 정사도(鄭思道), 송강(松江) 정철(鄭澈)로 이어지는 감무공파(監務公派)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 양파는 동원이면서도 중간 계보를 잃어버려 촌수를 헤아리지 못한다 합니다. 대표적 인물로는 위에 언급한 정몽주, 정철 외 영조때 영의정을 지낸 정호(鄭澔), 양명학의 거성 정제두(鄭齊斗) 등을 들 수 있습니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216,510명이며 집성촌은 경북 영천시, 경남 하동군, 경북 경산시, 경북 김천시 봉산면, 평남 운산군 등입니다. 인구보정된 지역별 자료를 보면, 강원(13.3%), 충북(12.3%) 등의 산간 지역에 다소 많은 분포를 보이면서도 대체로 전국적으로 균등한 분포를 보이나, 광주-전남-전북 등 호남 지역에는 아주 낮은 분포를 보이는 것도 특기할 만합니다. 정안님이 주신 정보로, 23andme의 연일 정씨 한 분이 C3가 나왔습니다. 하동 정씨와 마찬가지로 이 집안도 만일 C3가 주류 하플로라면 우리나라 정씨 중 약 1/4이 C3로 나온 것이 다소 이해가 될 것입니다. 특히 경상도에 C3가 가장 많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연일 정씨가 C3일 개연성은 매우 높습니다. 다만, 연일 정씨도 인구수가 비교적 많다는 점, 세계의 실전이라는 중대한 문제, 2개의 촌수를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다른 계파의 존재,,, 등으로 볼 때 이 연일 정씨도 다양한 하플로가 공존할 가능성이 있으리라 봅니다.
66) 옥천 조씨(玉川 趙氏)
옥천 조씨는 조장(趙璋)을 시조로 하며, 그는 고려조에 광록대부 검교대장군문하시중을 지냈습니다. 그의 증손 조원길(趙元吉)이 고려 공양왕 때 옥천부원군에 봉해졌기 때문에 본관을 옥천으로 하였으며 옥천이 순창(淳昌)의 별호이기 때문에 순창 조씨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호서 지방에 본거를 두고 고려의 호장 조자장(趙子長)을 시조로 하는 또 한 파의 순창 조씨가 있어 조장이 조자장의 7세손인 조문정의 아우라는 설도 있지만 선대의 세계를 상고할 문헌이 없어 동족인지, 또는 전혀 계통이 다른 동성동본인지 분간하지 못한다 합니다. 대표적 인물로 중종 대 성균관 대사성, 경주 부윤 등을 지낸 조침(趙琛)이 있으며 조선조에 문과급제자 13명을 배출했습니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49,846명입니다. 집성촌은 전남 순천시 주암면, 송광면 일대입니다. 우리 카페의 회원이신 현덕님이 바로 옥천 조씨이시죠. 부계하플로로는 Korean star cluster에 속하는 O2b*(SRY465)로 나온 바 있습니다. 인구보정된 지역별 자료에서도 전남 29.4%, 광주 21.0%, 전북 16.3% 등 호남에 집중 분포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전형적인 호남을 근거지로 둔 집안으로서 Korean star cluster O2b*를 보이는 점으로 비추어, Korean star cluster는 호남의 동남부 내지는 영남의 서남부 즉, 변한 지역을 중심으로 급격히 퍼져 나간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을 할 수 있는데, 다른 Korean star cluster O2b*에 속하는 여러 집안(FTDNA의 안씨분 등)의 결과가 나오면 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옥천 조씨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현덕님의 포스팅 http://cafe.daum.net/molanthro/Mcup/46, http://cafe.daum.net/molanthro/I4rp/293, 및 http://cafe.daum.net/molanthro/I4rp/330을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
三界无安,犹如火宅。众苦充满,甚可怖畏
                            --------《法华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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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능성 구씨(綾城 具氏)
능성 구씨의 시조는 구존유(具存裕)이며, 관직은 고려에서 삼한벽상공신, 삼중대광, 겸교상장군에 이르렀습니다. 구존유의 장인인 신안 주씨의 시조 주잠(朱潛)은 송나라 한림학사로서 송나라가 몽골에 패망하자 1224년 구존유와 함께 망명하였는데, 주잠이 능성에서 살며 2남 1녀를 두었는데 딸이 구존유에게 출가하여 능성에서 살게되자 능성을 본관으로 하였습니다. 묘소는 전남 화순군 한천면 정리에 있었으나 없어졌다 합니다. 대표적 인물로 고려 때 사재감 판사를 지낸 구현좌(具賢佐), 성종 대 이조판서 구치관(具致寬), 좌의정을 지낸 구인후, 영의정에 추증된 구인기 등이 있습니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120,503명이며, 집성촌은 충남 당진시 송악면, 경기도 광주시 서부면, 전남 화순군 한천면, 충북 보은군 산외면, 충남 공주시 의당면 등 전국 곳곳에 분포합니다. 인구보정된 지역별 분포를 보면, 대구에 12.9%로 다소 많은 분포를 보이는 것을 제외하면 전국적으로 대우 고른 분포를 보입니다. 우리 카페 회원인 구주백제님이 능성 구씨로서 부계하플로그룹 조사 결과 O2b*로, Korean star cluster에 속하는 아주 대표적인 유형에 속합니다. 현재는 전국적으로 고른 분포를 보이기는 하나, 본관의 출처가 전남 화순군 능성으로 아까 옥천 조씨와 마찬가지로 Korean star cluster O2b*의 출발지가 이 지역 근처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물론, 능성 구씨도 인구수가 10만명이 넘어가는 성씨로 지역에 따라 여러 부계하플로그룹을 포함할 것으로 보입니다.
68) 횡성 고씨(橫城 高氏)
횡성 고씨는 비교적 희귀한 본관/성씨로, 제주 고씨와의 구분을 위해 고구려 고씨로 불리기도 한다고 하며, 요녕 지역의 장수왕을 시조로 하는 요양 고씨, 중시조를 약광으로 하고 있는 일본의 고마씨와 함께 현존하는 고구려 왕족의 후손으로 여겨지며, 1824년 발견된 횡성 고씨 족보, 1995년과 2004년 강원일보의 보도기사로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합니다. 시조는 너무나도 유명한 고주몽(高朱蒙)이며 중시조는 고인승(高仁承)으로, 그는 고구려의 마지막 왕인 보장왕 고장(高藏)의 아들이자 고구려 부흥운동 시 왕에 추대된 고안승(高安勝)의 형으로, 그의 12세손 고민후(高旻厚)가 강원도 횡성에 정착하여 횡성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횡성 고씨는 예전에 언급한 고을나를 시조로 하는 제주 고씨와는 완전히 다른 계통으로 보아야 하나, 제주 고씨의 일파 중 횡성 고씨라 불리는 분파가 있었기 때문에 이들과 혼동이 될 가능성이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횡성 고씨의 2000년 현재 인구수는 4,277명에 불과합니다. 인구보정된 지역별 자료를 보면, 예상대로 강원도에 집중된 분포(41.2%)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 이들이 최소한 강원도에 정착한 집단이라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이밖에 강원도 인접의 충북(11.5%), 경북(8.0%)에 많으며, 의외로 다소 멀다고 할 수 있는 울산(9.4%)에도 많이 분포하고 있네요. 우리 카페 회원이신 구주백제님이 횡성 고씨 종친회장님의 부계하플로검사를 받아 오셔서 소중한 정보가 되었습니다. O3a2*(P201)이 나왔는데요, 만일 이 분이 횡성 고씨를 대표할 수 있고, 횡성 고씨가 진정 고구려 왕족의 자손이라면, 고구려 왕가의 부계하플로의 한 갈래는 P201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요양 고씨 또는 일본 약광의 후손 고마씨의 부계하플로 조사를 하여 일치하는 지를 보면 되겠지만, 현실 가능성이...
三界无安,犹如火宅。众苦充满,甚可怖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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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宗镜录》
69) 양천 허씨(陽川 許氏)
양천 허씨는 지난번 김해 허씨 편에서 약간 언급된 바가 있습니다만, 여기서 새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조 허선문(許宣文)은 가락국 수로왕비 보주태후 허씨의 30세손으로 고려조 대광공이었는데, 대대로 공암현(孔巖縣, 양천의 다른 이름)에 살면서 농사에 힘을 써 거부(巨富)가 되었는데, 마침 고려 태조가 견훤을 정벌할 때 부족한 군량을 보급하여 군의 사기를 회복케 함으로써 견훤을 대파하는 데 큰 공을 세웠기에 태조가 그 공을 가상히 여겨 가부(假父)라 칭하고 공암을 식읍으로 하사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본관을 공암(양천)으로 하였습니다. 대표적 인물로는 고려 충렬왕 때 "고금록"을 찬술한 허공(許共), 조선조 우의정을 지낸 허종(許宗), 좌의정을 지낸 허침(許琛), 동의보감으로 유명한 허준(許浚), 숙종 때 우의정을 지낸 남인의 영수 허목(許穆), 영의정을 지낸 허적(許積) 등을 들 수 있으며, 조선조에 상신 5명, 청백리 7명, 호당 6명, 공신 5명, 시호 24명을 내었습니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130,286명이며 그 집성촌은 전북 진안군 안천면, 전남 순천시 해룡면, 함북 길주군 덕산면, 함북 길주군 양사면, 평북 구성군 사기면 일원입니다. 인구보정된 지역별 자료를 보면 의외로 제주(18.7%)에 가장 많으며, 영남권에 극소 분포를 보이는 것을 제외하면 전국적으로 고른 분포를 보입니다. 왜 제주에 이토록 높은 분포를 보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굉장히 여러 가지일지 모르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것은 다음 풍천 임씨편에서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김해 허씨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수로왕비 허씨의 후손임을 자처하고 있지만, 30세손이라는 극도로 먼 후손에 와서야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실제로 이들의 역사가 타 집안과 유사하게 고려 초 공을 세우면서 시작했을 가능성을 높게 해줍니다. 우리 카페 회원이신 주황색님 친구인 양천 허씨분의 부계하플로 검사 결과 O3a2c1(M134)가 나왔었지요. 만일 이들의 전승이 사실이라면 가락국의 주요 지배 세력 중 O3a2c1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고, 사실이 아니라면 이들은 가락국과는 무관한 세력이겠지만 어쨌든 북방에서 내려온 세력으로 보는 게 맞을 것입니다. 물론, 양천 허씨도 인구가 적지 않으므로 O2b1(47z) 등 다양한 하플로 구성을 가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70) 풍천 임씨(豊川 任氏)
풍천 임씨의 시조 임온(任溫)은 중국 소흥부 자계현 사람으로 그의 6세손 임주(任澍)가 1275년 고려 충렬왕 1년에 충렬왕의 왕비이며 원나라의 황녀인 제국공주를 따라 우리나라에 들어와 귀화하여 경상도 추동 안찰사를 거쳐 어사대부, 감문위 대장군을 지내고 풍천을 본관으로 하사받았습니다. 임주의 아들 대에서 충숙왕 때 삼사판사 임자송(任子松, 백파)과 민부전서 임자순(任子順, 중파)의 두 갈래로 크게 나뉘게 됩니다. 대표적 인물로는 갑자사화의 주역이자 중종반정 때 죽임을 당한 임사홍(任士洪), 성종 때 직제학을 지냈으며 연산군 비방으로 갑자사화 때 화를 입은 임희재(任熙載), 병조 판서를 지낸 임권(任權), 형조판서를 지낸 임호신(任虎臣) 등이 있으며, 임진왜란 때 유명한 의병장이자 고승으로 유명한 사명대사도 속성이 임응규(任應奎)로 풍천 임씨입니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99.986명이며, 집성촌은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충북 옥천군 동이면, 충남 보령시 미산면,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등입니다. 인구보정된 지역별 자료를 보면, 위의 양천 허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제주(17.8%)에 가장 많고, 충남(12.6%), 대전(11.5%), 충북(7.0%) 등 충청권에 높은 분포를 보이며, 수도권-강원 등 중북부 지방에도 어느 정도 비율을 보이나, 영남이나 호남 지방에는 상당히 낮은 분포를 보입니다. 풍천 임씨 역시 우리 카페 회원이신 주황색님의 친구 중 한 분으로, 부계하플로 검사 결과 O3a2c1(M134)가 나왔습니다. 개인적인 추측은 이들은 중국에서 온 것이 아니라 대표적 북방 세력 중 하나인 몽골인 또는 몽골제국에 소속된 북방민족계가 고려조에 내려와 창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주도의 높은 분포도 그렇게 설명이 되지 않을지 엉뚱한 상상을 해봅니다만... 양천 허씨도 유사한 경우가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물론, 풍천 임씨도 인구수가 10만명에 육박하는 수가 적지 않은 집안이므로 다양한 세력이 어우러져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긴 어렵습니다.
이상으로, 풍산 홍씨, 풍양 조씨, 김녕 김씨, 하동 정씨, 연일 정씨, 옥천 조씨, 능성 구씨, 횡성 고씨, 양천 허씨, 풍천 임씨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오랜만에 만들려니 힘이 많이 드는군요..ㅠㅠ 앞으로도 새로운 본관/성씨의 부계하플로그룹 결과가 모일 경우,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성원 바랍니다.^^
三界无安,犹如火宅。众苦充满,甚可怖畏
                            --------《法华经》
是以法从心生。名因法立
                      ------------《宗镜录》
本帖最后由 WuShan_53_ 于 2013-4-1 16:32 编辑

感觉很寻常,O3系没有更多的联想空间。幸亏不是其Q1XXX,否则,又有宏论出来。
我很早就猜测东北的秽貘是o3为主
既然同在东北,有秽有貘,那么,秽与貘应该有很大的区别,否则,没有必要分别叫秽和貘。外人也许分不清秽与貘,但他们彼此肯定是泾渭分明的。
本帖最后由 红山人 于 2013-4-2 22:16 编辑

秽貊至少两千年前开始是一样的。史书记在的证据很多。先秦被区分是因为文化类型和分布区域不同。但我觉得一开始就同源的可能性更大。只是汉人根据上述不同用了两种称呼。这个还真可能是因为汉人作为外没搞清楚的原因或者汉人有时不是根据语族去归类的。 就像东胡和鲜卑。靺曷和粛慎。秽和倭。他们之间肯定不会这么称呼自己。 夫余人就是夫余人,句丽人就是句丽人。 貌似除了国名没有民族名。而他们之间的关系可能就像鲜卑和蒙古那样并不是直接延续。父系不同。语言除了是同源也有很多不同。就像满语的官话汉语和朝鲜语同源词女真靺曷语里没有。所以我认为很多古代文明都是现代民族的旁系创造而不是直系。
梦回大振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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